Home > 공지사항 > 그대를 위한 촛불이 되리라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은 태양계 내에서는 지구밖에 없다.
요즘 화성에서 인공 위성이 보내온 자료를 통해 물이 있었다는 흔적을 발견하고는
그곳에 혹시 생물이 살고 있을 가능성이 있지 않겠는냐고 과학자들은 흥분하고 있지만,
결과 인간은 같은 생물체는 살지 않는다.
왜냐하면, 태양계에서 어머니의 자궁같은 역할을 하는곳은 지구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체의 자궁은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태양계에서도 역시 자궁에 해당하는 곳은
지구만이 유일하다.
지구를 자궁이라고 한다면, 금성은 폐로 해당하고, 목성은 간에 해당하며, 수성은 신장,
토성은 비장, 수많은 은하수는 인체를 이루는 기본적인 세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태양계에서는 지구만이 유일한 인간의 생존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지구를 중심으로 한 태양계에 관한 것일 뿐, 사실 우주에는 수십 개의
태양계가 있다.
태양계에는 지구와 같은 생물이 살 수 있눈 행성이 수십 개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오늘날 과학의 힘으로는 다른 태양계를 알수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장체질로 화해야 가능한 법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독자들은 황당무계하다고 하겠지만, 미시의 세계와 거시의 세계를
비교해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이다.
정충 시절에는 난자와 만나서 수정란이 되는 상태를 전혀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며,
모태 안에 있을 때도 역시 몸 밖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역시 유아시절에는 성인들의 세계를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태양계 밖에서 볼 때
정충과 같은 현 인간의 상태에서는 결코 외계에 관한 일을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정충은 사정을 통해 나오지만 수정란이 되지 못하며 모두 사라져버리고,
유아가 성년으로 자라지 못하고 죽으면 아무 보람이 없는 것처러, 인간이 태양계의
자궁에 해당하는 지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음으로 끝나는 현 상황에서 성년이 되어
외계인과 교류하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러고보니 인간들은 기껏, 죽은 다음에 천당이나 극락에 간다고 하는 종교적인 교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만약 이런 교리마저 없다면 인간은 죽음의 공포와 허무함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인간들의 정신이 공황으로 치달으면 사회는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는 혼돈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런 면에서 종교는 인간의 마음에 그래도 위안과 희망을 던져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죽은 다음에 희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야 할 때가 되었다.
오늘 날까지 우리 사회는 수많은 세월동안 종교적인 교리와 정신적인 문화가 기본이 되어
아이들에게 지식을 가르쳐왔고, 그 결과 오늘날과 같은 첨단 과학문명이 발달했지만
아직도 영적인 분야에서는 아직도 공식적인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사후의 세계는 논할 수 없다.
또 논하고 싶은 의욕이나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다만 체험을 통해 지금과 같은 불완전한 육체를 영체로 개선하는 원리와 방법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이처럼 미시와 거시 운운하며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성장할 수 있는 나이는 23세까지이다.
본래 생명이란 것은 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나고 자란다.
이와 같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연의 법칙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나는 이를 가르켜
'자연생명'이라고 부른다.
지연생명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본능에 충실한 채로 그냥 늙고 노쇠하여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오직 인간만은 자연생명이 아닌 '인공생명'으로 거듭 태어나는 길이 있다.
인공생명이라는 것은 내 자신이 자연의 법칙인 공식을 깨달아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창조하여
누리는 영원한 생명을 가리킨다.
나는 이런 법칙을 가리켜 이미 '음양식사법'이라는 이름으로 만천하에 밝힌바 있다.
오늘날의 식생활 문화는 소모적인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부모가 자식을 낳아 양육하고 교육을 시키는 것은 사회에 나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세포도 성장이 되면 스스로 모든 영양분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하건만, 애석하게도 오늘날의 식생활 문화는 이와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과학이라는 명분 아래 영양학설에 묶여 하루에 몇 칼로리를 먹어야 하고, 물은 몇 리터를 마셔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등 시도 때도 없이 무원칙적인 식생활을 함으로써 세포가 스스로
생산할 수 있는 기회를 무산시켜버리고 있으니 소모적인 식생활 문화라고 한 것이다.
본래 영양이 조금 부족해야만 그것을 생산하기 위해서 세포는 활동을 하게 되는 법이다.
그것은 마치, 진정으로 자식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부모가 약간 모자라게 지원을 해주어야
하는 것과 같다.
만약 자식이 귀엽다고 하여 무엇이건 넘치게 공급을 해준다면 그 아이는 이내 게을러지고 의타심이
생겨서 부모없이 스스로 생존하기 어럽게 된다.
세포 역시 마찬가지여서 약간 부족한 듯 영양분을 공급해주어야 하는데도, 현대의 영양학설이
너무 잘 먹게 하는 바람에 이미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버린지 오래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세포다.
그러므로 세포가 강하면 내가 강한 것이고, 세포가 약하면 내가 약한 것이다.
강한 세포는 스스로 모든 것을 생산하고 창조할 수 있는 본래의 능력을 지니게 될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포를 강하게 하는 방법을 '음양식사법'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매일 식사량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하루에 3,000칼로리를 먹던 식사량을 100칼로리 정도 줄여서 2,900칼로리 정도를
6개월간 계속 먹게 되면 부족한 영양소를 스스로 생산할 수 있는 세포로 성장한다.
그리고 6개월후부터는 거기서 다시 100칼로리 정도를 줄여 2,800칼로리를 먹는 식으로
6개월마다 계속 줄여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세포는 부족한 양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강해지게 마련이다.
성장체질을 형성하고 있던 일상적인 세포는 생산세포로 전환되어 어느 정도 모자란 것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신의 능력인 창조력을 온전히 회복하게 되는 창조세포로 전환되니 이를 가르켜
영장체질이라 한다.
이런 것은 철저하게 우주의 공식에 따라야 한다.
아무런 공식없이 하다가는 괜히 몸만 망치게 마련이다.
오늘날 단식이나 금식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몸을 망치는 이유가 바로 이런데 있다.
생명에는 엄연히 법이나 질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렇게나 먹고 마시게 되면
반드시 생명을 거역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공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공식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시간과 공간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3일간의 가사상태에서 이 법을 인류 최초로 깨달았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내 몸을 실험도구 삼아 30여년간 갖은 고생을 다했다.
그리고 그결과는 이미 수많은 난치병과 불치병 환자들의 사례를 통해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자부한다.
이 법칙과 실천요령은 이미 1992년부터 책과 비디오를 통해 세상에 내놓았다.
누구든 책과 비디오만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너무도 쉬운 것이기에 일부러 부인하려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실천을 할 수 있다.
한편에서는 과학적이 아니라느니, 학계의 인정을 못 받았으니 하면서 폄하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기런 사람일 수록 일단 음양식사법대로 실천해보길 권유한다.
5일~15일이 지나면 좋은지 나쁜지를 분명히 알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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