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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위한 촛불이 되리라

47. 평생 잊을 수 없는 사람

  • 관리자 (hmp337)
  • 2022-03-08 18: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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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2월 3일, 한 간암 환자가 가족들과 함께 상담하러 왔다.

환자 이름은 전승근, 나이는 43세였다.

사연인즉 병원 검진 결과 간암 말기였다. 의학적으로 손을 쓸 수 없는 단계에 이르러 오래 살아야

6개월 정도 살 수 있다는 진단을 받고는 죽어도 고향 땅에 가서 묻히겠노라고 짐을 싸던 중에

우연히 내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다고 했다.

환자의 증상과 고통을 들어보니 복수가 차서 음식도 먹을 수 없고 명치 밑이 답답하여 눕지도 못했다.

앉아 있으면 가슴이 받쳐서 바로 앉지도 못하고 할 수 없이 이불을 높이 쌓아놓고는 

거기에 이마를 대고 구부린 채 지낸다는 것이다.

내가 볼 때는 6개월이 아니라 2~3개월도 못 살 것 같은 증상이었다.

나는 몸안의 자연치유력만 강화시키면 5일이면 치료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알 수 있으니

5일분만 약을 먹어보고 효과가 없으면 고향으로 내려가라고 했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는지 약의 효과가 급진전을 보여 7일만에 부인의 봉제 일을 도와 줄 수 있을 정도로

효험을 보았다.

가족의 기쁨은 하늘을 찌르는 것 같았고, 나 또한 천하를 얻은 기분이었다.

환자는 다섯 평 정도의 집에서 두평은 방으로 세평은 가게로 사용하면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었다.

부부가 봉제 일을 하면서 초등학생 2남 1녀를 공부시키며 어렵게 산다는 것을 3개월후에야

알게 되었다.

진작 어려운 형편이란 것을 알았더라면 약값이라도 싸게 해주는 건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환자를 지도한지 정확하게 3개월 25일 되는 날이었다.

1989년 4월 27일 의료법 위반으로 다시 입건되어 경찰서에서 조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그가 나를 찾아왔다.

"선생님, 저는 어떻게 해요." 

그가 애처로운 표정은 나를 뭉클하게 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 걱정마시고 몸에 이상이 생기면 편지를 하거나 면회와서 상담하세요."

그를 이렇게 안심시킨 후 나는 두번째로 2년 6개월이란 형무소 생활을 시작했다.

환자는 내가 형무소에 있는 동안 내 가족에게 위로의 말과 함께 쌀도 사다주었다.

그리고 몸에 이상이 있을 때마다 내게 면회와서 상담을 했고 면회 시간이 짧아 말을 다 못했을 때는

편지를 했다.

한번은 면회와서 하는 말이 검진을 해보니 암세포는 치유되었는데 담석증이 있으니 

물을 많이 마시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되는냐는 것이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담석증 처방으로 그의 건강은 정상적으로 회복되었다.

내가 두번이나 구속되었을 때 그 많은 환자들 중에 나를 찾아온 사람은 오지 전승근씨 뿐 이었기에  

그를 잊을 수 없다.

필자는 1991년 10월30일 광주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한 후 무면허 의료행위는 완전히 청산하고

1992년부터 책과 비디오를 제작하여 보급했다.

그리고 더 많은 이들에게 음양식사법을 알리기 위해 "암은 불치병이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전승근씨의 사례담을 실은 광고를 일주일에 한번씩 1년동안 일간지에 내보냈다.

일단 광고가 나자 전국각지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승근씨에게 전화상담이 왔다.

새벽이든 낮이든 아무때나 찾아와서 몇 시간씩 상담을 하고 가도 그는 짜증 한번내지 않았다.

봉제 일에 일손이 모자라 바쁜데도 환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동안 수십 명의 치유사례를 신문광고에 실었지만 환자들의 후회와 불평때문에 대부분

1~2회로 중단되었다.

광고를 내기전에 미리 환자들에게 양해를 구하면서도 상담해주는 일이 어렵고

힘든 것이란 얘기를 하면 모두 기꺼이 허락을 한다.

하지만 막상 광고를 내보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화 상담이 오는 통에 모두 후회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승근씨는 바쁜 와중에도 1년씩이나 홍보활동에 협조해주었으니 그를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그가 언제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선생님 덕분에 아이들 모두 대학 공부시킬 수 있었어요."

그는 지금도 변함없이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전화도 자주하며 여러가지 걱정도 해준다.

필자는 40년동안 치유해준 그 많은 사람 중에 그렇게 하는 사람은 오직 그뿐이기에 더더욱

그를 잊을 수 없다.

인간은 외롭고 고독할 때 위로해주는 사람과 배 고플 때 수제비 한 그릇 사주는 사람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40년 동안 같은 사람, 평생 잊을 수 없는 사람은 전승근씨 한 사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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