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공지사항 > 그대를 위한 촛불이 되리라
그때 내 나이 스물여섯 살, 12월 초순경으로 기억한다.
삼각산에서 수행하다가 식량이 떨어져 잠시 산에서 내려 온 나는 세검정에서 38번 버스를 타고
종로 화신백화점까지 갔다.
젊은 나이에 내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산에서 도를 닦으니 오죽했겠는가, 사고 방식 또한 마찬가지여서 외모에는 전혀 신경을 안 썼다.
더벅머리 총각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런 내게도 첫 사랑이 찾아왔다.
그때는 몰랐는데, 언제부턴가 나는 그것을 첫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글을 쓰게까지 되었다.
오랜 세월을 가슴에 간직했던 이야기다.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게 창피하기도 하고 솔직히 표현하면 가슴 떨린다.
이 글을 다 읽고 나면 어떤 독자는 "그까짓 것" 이라며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혹은 "정말 그래." 하며 동조할지도 모르고,,,
버스에 탄 나는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런데 몇 정거장 가지 않아 젊은 아가씨가 타는 거였다.
그리고 그녀는 마치 영화처럼 내 옆자리에 앉았다.
도 닦기에 바쁜 나는 여자와는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였는데
그날은 웬일로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그녀도 시원스레 받아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버스를 타고 시내를 향해 달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릴 정류장에 가까워지자 마치 그녀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친밀감이 드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농담조로 말을 건넸다.
"사람이 지나다가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아가씨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웃기만 했다.
"우리가 차 안에서 만나 대화도 나누는 사이가 되었으니 시간있으면 내려서 커피라도
한잔합시다."
나는 말을 하면서도 나 자신이 우스웠다.
도를 닦는 내가 웬 여자란 말인가, 지금 이게 무슨 수작인가,
하지만 아가씨의 입에서는 생각지도 않은 말이 나왔다.
"오늘은 시간이 없고, 다음에 만났으면 좋겠어요."
그러자 내입에서도 생각과 다른 말이 나왔다.
"다음이면 언제요?"
"모레요."
"모레 몇시쯤요?"
"오후 3시요."
"그럼 오후 3시에 신신백화점 안에 있는 신신다방에서 만납시다."
지금 제일 은행 본점 자리에 신신백화점이 있었다.
내가 젊었을 때는 무척이나 멋진 곳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쯤으로 멋과 유행을 선도하는 곳이었다.
내가 창에서 내려 손을 흔들며 눈으로 인사를 하자 아가씨는 손을 흔들며
방긋 웃는 모습으로 "모레 꼭 나갈께요." 했다.
버스가 사라지자 나 자신과 그녀를 향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미쳤니? 너를 만나게 나는 도를 닦는 사람이야, 도를 알기나 알아?
어디서 마귀같은게 나타나서 나를 시험하네. 키도 조그만 게."
방금 사라져간 아가씨는 키가 작지 않았다.
중키에 볼우물이 지는 귀여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나는 일부러 마귀 운운하며 매도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보통과 다르단 말이야. 알아? 도를 닦는 사람이야,
도를,,, 오! 부처님, 하나님, 북한산 산신령님, 저를 마귀이 유혹으로부터 지켜주소서."
나는 부식을 장만해서 어깨에 짊어지고 다시 산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늘 하던 대로 명상이 잠겼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 거였다.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앉아야 하는데 그게 뜻대로 안 되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어서 몹시 당황스러웠다.
나는 한참을 곰곰 생각하고, 마침내 그 아가씨때문이라는 결론을 도달했다.
"흥"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원인을 알았으니 답은 주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녀이 얼굴을 애써 지우며 명상에 전념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밤이 깊어 갈수록 그녀의 얼굴은 점점 또렷하게 보였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이 눈사람처럼 커지지만 했다.
"나는 수행하는 몸이다."라는 말을 신들린 사람처럼 중얼거려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가씨가 방긋 웃으며 "모레 꼭 나갈께요." 하며 손을 흔드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수행이고
명상이고 아무것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 보고 싶고 그리워지는 마음은 마치 오래 사귄 연인같았다.
그렇게 하룻밤이 더 지났다.
그러나 하루가 1년같이 긴 세월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약속시간이 되어 그녀를 만났는데 그렇게 반갑게 좋을 줄이야.
다방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다방으로 가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통행금지 사이렌이 울렸다.
아가씨는 "어머, 큰일났네. 벌써 12시야, 어떻게 하지." 하며 걱정을 늘어놓았다.
나도 걱정이 되었다.
이어 "할 수 없지요. 여관이라도 들어가서 얘기나 하며 밤을 새읍시다." 했더니
아가씨는 "그러면 우리의 숨결은 꼭 지키며 얘기나 해요." 하는 거였다.
나는 좋다고 했다. 그때 나는 동정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단단히 약조를 하고 여관에 들어갔다.
그리고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즈금은 제대로 생각나지 않지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무척이나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 사이 우리는 자연스레 한몸이 되었다.
'난 수행하는 사람이다'라는 주문은 더 이상 들어먹지 않았다.
다음 날 산으로 들어와서 수행을 하려고 하니 그녀 얼굴이 아른거려 수행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참을 수 없어 그녀를 여러번 만나고 보니 돈이 다 떨어졌다.
때문에 만나고 싶어도 경비가 없어서 만날 수 없게 되니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옛말에 스승을 따르자니 사랑이 울고 사랑을 따르자니 스승이 운다더니,
나의 처지는 사랑을 따르자니 돈이 없고 수행을 하자니 사랑이 우는 격이었다.
정말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사나이 한번 먹은 마음 끝까지 가봐야지 속세 인연에 사로 잡혀 갈 길을 못 간다면
인생의 낙오자로 탈락하고 말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성탄절 저녁 6시에 종로 2가 파고다 공원앞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리고 종로 3가 단성사 극장앞 동원다방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갔다.
그날따라 눈발이 휘날리는 분위기 좋은 밤이었지만, 나에게는 이별의 밤이 되었으니
눈송이마저 내 마음을 아는지 더욱 더 그악스럽게 내렸다.
그녀는 남의 속도 모르고 팔짱을 낀 행복하게 조잘댔지만 나는 다방에 가서 어떻게 말을 할까만
생각했다.
다방에 앉아 음츠러든 몸을 녹인 후 나는 사정 이야기를 했다.
차마 돈이 없다는 말은 못하고, 수행하는 몸이라 이제는 만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아가씨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숙인 채 눈물만 흘리고 있으니
나의 마음은 처량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것뿐이야.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흘러 나오는데 그냥 따라 그 노래가 엄찌나 구슬프게 들리는지,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노래의 멜로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그날 나는 목이 메어 말했다.
"정애씨. 우리들의 만남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거야, 좋은 사람 만나 부디 행복하게 잘 살아."
한참만에 그녀가 말했다.
"수행을 하겠다는 사람이기에 붙잡을 수도 없고, 짧은 시간이지만 나 역시 상문씨와의 사랑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열심히 정진하여 목적한 소원을 이루시길 바랄게요. 꼭 기다릴게요."
나는 첫 사랑은 이렇게 20여일만에 끝이 났다.
지금도 눈 내리는 날이면 첫 사랑이 보고 싶고 그리워진다.
내 수행은 어쩌면 그녀의 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첫 사랑을 가슴에 담고 나는 수행에 정진하기 시작했다.
그 세월이 어언 간 41년이다.
그리고 이제는 이 글을 쓰는 나이까지 되어 버렸다.
나는 아직도 그 아가씨가 보고 싶다.
그래서 시내에 나갈 때면 일부러 신신백화점 자리인 제일 은행 본점 앞을 거닐어 본다.
그녀는 내 첫사랑이다.
나는 이제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다. 내 아내가 질투를 할지라도,,,,,,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