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공지사항 > 그대를 위한 촛불이 되리라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도를 낚는다 하면 하던 일을 팽개치고 깊은 산 중이나 또는 골방에 들어 앉아
기도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수천 년을 내려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속세를 떠나 조용한 곳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방법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도란 생활속에서 이루어져야지 생활을 떠나 통해보려는 것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고
필자는 단언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수행 방법의 근본을 모르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행이란 어려운 생활속에서 이루어져야 어떠한 복잡한 환경속에서도 몸과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은 법인데
혼자 조용한 곳에서 수행하게 되면 복잡환 환경에 부딪혔을 때 도로 아미타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오랫동안 수행했다는 분들이 가끔 필자를 찾아오기도 하는데 그 분들은 대접해야 할 경우
나는 그들에게 먼저 양해를 구한다.
"오늘은 제일 시끄러운 곳으로 한번 모시겠습니다."
그러고는 카바레로 모시고 가서 일부러 스피커가 가까이 제일 시끄러운 좌석에 앉는다.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는 분은 침착해지려 노력한다.
나는 여인을 불러 춤을 추며 일부러 흐트러진 자세로 대화를 나눈다.
그러면 금방 상대방의 불편한 심기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어떤 분은 여인이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진저리를 친다.
마치 송충이가 몸에 붙는 것 같은 반응을 보인다.
하비만 그곳에서 술을 따르는 여인들을 조금 관찰해보면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카바레에 오는 여인들은 우선 나이가 있다. 따라서 가정주부일 경우도 많다.
그녀들도 자신과 가족의 한끼밥을 빌려오는 것이다.
결코 즐기기 위해서 아니다.
비약이 심하다고 하겠지만 내 아내, 내 여동생, 딸들인 것이다.
실없다고 하겠지만 한마디하자.
독자들께서 혹 그런 곳에 가게 된다면 여인들에게 잘 해주라. 그녀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자.
그리고 팁도 넉넉히 주라.
얘기가 잠시 빗나갔는데 다시 카바레로 모신 수행자분 얘기로 돌아가자.
생각해보면 몇 십년 수행을 했다는 사람에게는 카바레로 모셨다는 것 자체가 지옥이나 마찬가지일 것이요,
시끄러운 곳이라고 미리 양해를 구했어도 그 곳이 설마 카바레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수 십년 동안 수행했다는 분을 그 곳으로 모신 것은 수해의 강도를 체크해보기 위해서였다.
수행을 오래하면 시끄러운 곳에서도 고요함을 느낄 줄 알아야 한는데 수십년을 수행하는 분이
그 정도 수준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분 역시 필자를 향락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좋지 않게 평가하고 원망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지 전화 한번 온 일이 없다.
인도에 거주하는 티베트의 망명 종교 지도자가 달라이라마가 미국 하버드 대학교 연구생들에게
제공한 정보가 있다.
뇌의 활동을 나타내는 장치를 달고 생활하는 것이였는데 그는 명상할때나 일상적인 생활을 할 때나
그 수치가 일정하게 나타났다.
이는 곡 도가 통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카바레에 얘기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생활속에서 도를 닦았을 때는 아무리 시끄러운 좌석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도 내면에서는 고요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을 떠나 고요함을 찾으려는 것은 그 자체가 응달에서 자라는 나와 같다.
생활속의 음양식사법은 도를 닦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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